2021.12.24 23:00
최병철 이야기 54
1970년대 초에 시작된 대학입시 예비고사 제도는 성심여자대학에 엄청난 타격을 가져왔다.
전통적으로 서양의 귀족 가문의 딸들을 교육하는 성심의 교육이념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구미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의 맨하탄빌 성심 여대의 경우를 분석해보기로 한다. 흑인 학생이 들어오자 부호들이 딸들을 안 보내고, 후원금 도 기부금도 뚝 끊어져 결국 1960년대 중반에 문을 닫았다.
영국의 경우 교육의 민주화에 따 라 더 이상 귀족 중심의 학교운영이 불가능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른 문제였다. 예비고사는 곧 대학 선택의 기준이 되어 서울의 유명대학 들이 우수한 학생을 배당받고 지방대학들은 그 뒤에 고려되는 현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성심수녀회는 고심 끝에 대학을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세웠다. 1978년 부천에 3, 4학년을 위한 캠퍼스를 마련했고 1982년에 1, 2학년도 모두 이전해왔다.
좀 나아지기는 했으나 지방대학이라는 딱지는 계속 붙어 다녔다. 나는 1964년 이래 18년 만 에 춘천행을 졸업한 셈이다.
성심 수도회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만 갔고 급기야 성심여자대학을 가톨릭교 서울 교구에 헌 납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1980년대 중반부터 약 2년간 학생처장, 그 뒤를 이어 약 6년간 교 무처장직을 거쳤다.
1984년 가을부터 당시 명동성당 주임 김수창 신부의 요청으로 가톨릭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 었고 내가 하는 일은 주일 12시 김수환 추기경 미사의 음악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김수환 추기경과 성심여자대학의 앞날을 의논할 기회가 있었다. 명동성당 주교관에서 우선 대학의 명칭, 그리고 편재 등이 주제였다.
이 자리에서 가톨릭대학교는 성신교정, 성심교 정, 성의교정 등 3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종합대학교이다. 이렇게 합의에 도달했다.
그리고 초대 총장으로 강우일 주교가 취임했다. 나는 2002년 2월에 정년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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