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철 이야기3

2015.06.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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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나는 조사를 받기 위해 숙직실에 차려진 임시 사무실로 인도되었다. 조사관은 미군 소위였고 그 옆에 군복차림의 통역관이 배석했다.

국적은?’ 질문이 시작됐다.

대한민국입니다

인민군인가?’

아닙니다

직업은?’

서울 보성중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틀 전 혜화동에서 인민군에 의해 인질로 잡혀 미군포로 행렬 앞에서 길잡이 노릇을 하며 그곳에 까지 갔었습니다

혜화동? 그곳엔 왜 갔었는가?’ 조사관이 머리를 갸우뚱하며 다그쳐 물었다.

집은 명륜동인데 온 가족 아홉 식구의 먹거리를 혹시 구할까 하는 마음에, 너무 배가 고파서 거리에 나갔다가 낯익은 내무서원한테 잡혔습니다

조사관은 나의 다리를 가리키며

다리에 부상이라도?’

아닙니다, 몇 년 전 부터 앓고 있는 소아마비가 그 원인입니다.’

! 그랬군, 그런데 왜 탈출했는가?’

가족 걱정 때문이었고요, 춥고 배가고파 죽기 살기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대단히 위험한 모험 . . . . ’

조사관은 고개를 끄떡이며 서류에 서명했다. 조사를 마친 나는 통역관의 안내로 Frager 대위가 있는 방으로 갔다. 통역관은 나의 조사과정을 Frager 대위에게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고 약간의 대화가 끝난 다음 나에게

학생, 행운을 빈다.’

말을 마치자 바로 밖으로 나갔다. 당시 봄 학기가 4월에 시작하는 학제였기 때문에 내가 중학교를 다닌 것은 불과 2개월 하고 24일 정도였다. 그래서 영어는 알파벳을 떼고 몇 마디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Frager 대위와 나는 손짓 발짓으로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씨-레이션(미군의 야전용 도시락) 한 박스(13)를 나에게 가져다주며 난로위에서 끓고 있는 커피 한잔을 딸아 주었다. 생전 처음 맛보는 낯선 음식이었지만 그 얼마나 맛있었고 얼마나 넉넉했었던가 그 기억이 새롭다. 나는 그 한 박스를 한꺼번에 다 먹어 치웠다. Frager 대위는 놀라는 표정으로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나를 격려하였다.

 

여성동무

한 병사가 한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주먹밥의 주인공이자 어제 오후에 사라져 그 감시병한테 나를 혼나게 했던 바로 그 여성동무가 미군 장교복을 입고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여성동무가 웃으며 유창한 영어로 무어라 이야기하자 Frager 대위가 무어라 답한다. 여성동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촌 아줌마로 위장했던 척후병?

학생, 잘 도망쳐 나왔어.’

‘ . . . . . . ?’

나는 어이가 없어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여기에서 좀 지내다가 Frager 대위가 시간이 나면 집에 데려다 줄꺼야

? 그냥 보내주면 갈 수 있을텐데요

아냐, 이 일대는 최전방이라서 아주 위험하거든.’

여성동무는 방 들창 가 한구석에 있는 야전침대를 가리키며

저기에서 자고 아침에 만나.’

‘Good night!'

두 사람이 나갔다. 잠시 후 Frager 대위가 야전침대 하나를 들고 들어와 바로 내 옆에 누웠다. 피로가 겹쳤던지라 오래간만에 꿀맛 같은 깊은 잠을 실컷 잤다. 집 나온 지 첫날과 둘째 날과 셋째 날인 지난밤을 지옥과 천당에 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듬뿍 받으며 눈을 떴다.

실컷 잤나?’

여성동무는 저쪽 의자에 앉아 영자신문을 읽고 있었다.

이리와, 아침 먹어.’

토스토, 계란 프라이, 쏘세지에 주스와 우유 한잔씩이 야전 식반 위에 잘 차려져 있었다. <세상에 사람 팔자가 순식간에 이렇게 달라지다니 . . . . .> 처음 먹어보는 커피도 미군용 캔틴 컵으로 반가량을 마셨다. 창밖을 내다보니 이미 그 많은 탱크들은 거의 모두 출격했고 두어 대 만이 운동장 한구석에 있었다. 옆방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미군들의 이야기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과 섞여 여기가 전쟁터임을 상기시킬 뿐 평화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아주머닌 누구세요?’ 여성동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 ?’ 그녀는 눈을 크게 떠 나를 바라보며

영어 선생이었어, 우리 남편두.’

___’

근데 노부모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 남매 모두가 내가 보는 앞에서 처형당했어.’

?’

집은 폭격당해 없어졌구.’

그만, 그만하세요. 괜히 아픈 기억을 하시게 했나봐요.’

여성동무는 정말 모든 것을 잃었구나. 나는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점심 준비하러 가야 돼

저를 전혀 의심하지 않으시는 군요

거기 같이 잡혀 있었지 않아?’

여성동무는 가벼운 미소를 남기고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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