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철 이야기 24

2015.09.08 08:02

admin 조회 수:501

최병철 이야기 24

음대생

나는 1956학번 신입생 등록을 하러 서울음대 서무과(당시의 음대는 서울의대 캠퍼스 안에 있었음)에 갔다. 뜨개질로 번 돈으로 입학금과 첫 학기 등록금을 내고 교무과에 학과 등록을 하러 갔다. 여기에서 전공실기 교수가 정해지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었다.

‘최병철군, 학생은 김성태 교수한테 배정되었으니 참 좋겠어요.’

교무과 사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작곡과 신입생은 부전공악기를 택하는 것 이외에 다른 과목은 모두 교양과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예? 김성태 교수요?’

‘좋지요? 학생, 모두가 김성태 교수를 원하는데, 그분이 작곡과장 교수이시기도 하고요.’

‘아뇨, 전 이문근 선생을 원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분은 시간강사인데, 사실 김성태 교수께서 성적에 따라 몇 명을 고르셨는데 운이 좋게 뽑힌 것을 모르고 . . . . ’

‘그래도 저는 이문근 선생을 원합니다. 그리고 부전공 실기는 피아노를 하겠습니다.’

사무원은 고개를 갸웃 둥 하며

‘거 참 이상한 학생 보았네요, 과장님 말고 하필 강사를 전공 선생으로 모신다니, 할 수 없지. 그럼 그렇게 합시다.’

사실 이문근 신부는 1955년 말에 로마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처음 소개되는 상황이어서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정훈모 교수의 이야기만 듣고 이장호와 나, 그리고 제기동성당에서 온 이현순 등 세 명이 이문근 신부의 제자가 되었다. 어쨌든 나는 그토록 소망하던 작곡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팔자가 좋은 사람인가? 어머니가 일본에 사시던 이모에게 나의 행적을 편지로 알리시자 이모는 이께우찌 저 “대위법”. 림스키 코르사코프 저 오케스트레이션 등 몇 권의 원서를 선물로 보내주셨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세상 처음 작곡실기 렛슨을 받을 준비를 했다. <우선 제일 궁금했던 것은 이제까지 혼자 씨름하며 공부했던 것들이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일단 화성연습 노트 30 여권과 습작 “한산섬“, ”초혼“ 등 모두를 들고 혜화동에 위치한 대신학교 1층 현관 왼쪽 둘째 방 ”이문근 신부“라는 패말을 찾아 노크를 했다.

‘네, 들어오세요.’

근엄한 음성이 안으로부터 들려나왔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안녕하십니까? 신부님!’

‘최병철 군인가?’

‘예, 최병철입니다.’

‘음, 그동안 공부는 어떻게 했나? 선생은 누구고?’

나는 자못 긴장했었는지 좀 우물쭈물하며 내가 공부했던 과정을 요약해서 이야기해 드렸다.

‘그럼 혼자 했다고?’

‘예, 신부님.’

‘그래? 그럼 그간 공부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나?’

‘예, 신부님. 열심히 하긴 했는데 솔직히 자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가방에 하나 가득 들어있는 30 여권의 화성학 연습 노트와 습작 가곡 두 편을 꺼냈다.

신부님은 안쪽 구석에 있는 오르간으로 가서 앉으시며

‘노트는 마지막 최근 거 하고 뭔지 만들었다는 습작들을 이리 가져오게.’

신부님은 마지막 노트에서도 제일 끝에 있는 세 답안 정도 만 쳐 보시더니

‘화성학공부는 아주 탄탄하게 잘 되어 있군’

‘예? 정말입니까?’

‘응, 습작은 이거 두 곡인가?’

‘예, 신부님’

이 신부님은 옆에 있는 피아노로 옮겨 앉으셨다. 신부님의 멋진 피아노 솜씨는 내 졸작을 황홀하게 바꿔 놓으셨다.

‘응~, 괜찮아, 이게 정말 아무의 도움 없이 만든 거라고?’

‘예, 신부님.’

나는 자못 흥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검증해 볼 방법이 없어 나 자신을 항상 의심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런 의문이 일소되는 순간이었다.

‘신부님, 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화성학 문제들을 열심히 풀고 또 풀며 피아노로 쳐서 그 소리를 들어보는 일을 반복했던 것이 다였습니다.’

‘오~, 그래. 그런데 이렇게 제 길로 들어서기란 정말 어렵거든?’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도 완전히 초보로 다시 시작하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응~,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속7화음 까지는 다시 할 필요가 없고 부7화음 부분 2주 정도하고 전조과정부터 자세히 하면 될 거야.’

이문근 신부의 진단이 끝났다. 신부님은 악보들로 가득 찬 책장에서 커다란 악보 두 권을 꺼내오셨다. 이탈리아 화성학계의 거성 De Sanctis의 화성학 연습문제집과 Gennaro Napoli의 Bass melody에 의한 창작기법 등이었다. 신부님은 두 문제씩을 각 책에서 골라 노트에 옮겨가지고 가서 일주일간 풀어오라는 말씀이셨다. 문제의 모양새가 이제까지 내가 공부하던 스타일 하고 너무 달랐다. 그러나 문제풀이의 방법이 아주 재미있는 점을 나 스스로가 알게 되었다. 화음을 수직적으로 쌓는 것을 지양하고 Bass 주제 위에 쌓아지는 화음들의 연결과정에서 음악적 전개의 요소들을 발굴하는 가운데 작곡기법을 발전시켜주는 독특한 교재라는 점을 나는 깨달았다. 나는 Bass melody를 보며 그 위에 Soprano melody를 그려보는 것이 그 문제들을 푸는 키라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내성을 채워 넣고 보니 완전히 한 작품이 생산된 느낌이었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나의 공부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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