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철 이야기 25

2015.09.0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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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철 이야기 25

이문근 신부님 집무실

1956년 4월, 이문근 신부님의 집무실은 혜화동 소재 대신학교(현 가톨릭대학교 성신 캠퍼스) 붉은 벽돌 본관 현관을 들어서면서 왼쪽 두 번째 방이었다. 16여 평 정도의 꽤 넓은 방을 들어서면 왼쪽 벽과 창가 코너에 넓직한 응접 셋트, 약 6미터 오른쪽 벽과 창가 코너에 벽 쪽을 향해 오르간, 그 안쪽으로 피아노, 또 그 안쪽으로 작업 중인 목재들, 방 한가운데 큼직한 책상, 그리고 좌우 양쪽의 벽들은 악보와 책들로 가득 찬 책장들이 꽉 차 있었다. 창가엔 조그만 선인장 서너 개의 화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문근 신부님은 틈틈이 목수 일을 하셨다. 오르간의 페달(발 건반)을 손수 목재를 재단하여 제작하는 작업이었다. 대신학교 전속 목수의 도움을 받으며 재단, 대패질 등을 손수 하셨다. 당시 미군 짚 차의 모터를 돌려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을 채택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신기했던 점은 그 오르간이 소리를 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 오르간의 기계적 설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나는 알지 못 했다. 그러니까 신부님의 오르간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이문근 신부님의 귀국 오르간 독주회가 옛 국립극장(명동)에서 있었다. 당시에 국내에 파이프 오르간이 없어 어느 큰 교회의 하몬드 오르간을 빌려서 치렀는데 바로 그 연주가 한국 최초의 오르간 독주회였다. 레파토리는 Johann Sebastian Bach의 Partita와 Fuga 등 당시로서는 국내 초연곡들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수법

DeSanctis와 Gennaro Napoli의 Bass 문제 각각 2 곡씩의 과제와 단순형식의 가곡에서 복합형식의 가곡, 그리고 그것들을 피아노곡으로 다시 만들어보는 훈련이 골자였다. 나는 과제곡들을 각각 둘 또는 세 가지 다른 형태로 풀고 평균 3주에 습작 한 곡씩을 만들어 보여드렸다. 나는 항상 시간이 모자라 도중에 중단하고 나오게 되었고 따라서 연습하고도 검사받지 못한 악보들은 계속 늘어났다.

‘자네 말이지, 자네 앞 시간 학생이 보통 10~15분이면 끝나니까 일직 와서 하고, 또 자네 다음 학생도 늦게 오니까 그때까지 하면 어때?’

‘신부님! 쉬셔야죠, 어떻게 제가 그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괜찮아. 어차피 나는 학생을 기다려야하고 자네 공부해온 것을 모두 봐주려면 그 도리 밖에 없지 않아?’

‘신부님, 너무 감사합니다. 하지만 . . . . ’

‘내가 서울음대생 한데 내어놓은 시간인데, 조금 해온 학생 시간을 자네 같이 많이 해온 학생을 봐주는데 쓰면 어때?’

신부님은 내 “초혼”의 전주 부분을 치시더니 레시타티브를 이상한(?) 음성이었지만 정확하게 노래해나가셨다. 아리아의 높은 음역에 이르자,

‘자네가 좀 불러보지 그래.’

그토록 엄숙하셨던 얼굴에 묘한 미소를 지으시며,

‘자! 간주 다음부터 말이야.’

‘떨어져 나가앉은 산 위에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으~응, 괜찮군, 이거 지난주에 만든 거야?’

‘아닙니다 신부님, 고2 여름방학 때에 만들었습니다.’

‘누가 봐줬나?’

‘보성고등학교에는 음악시간도 없었습니다. 전쟁 중에 강냉이장사 한데서 얻은 화성학 책을 가지고 공부를 좀 한 것이 고작이고 혜화동 성당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 . . . ’

‘응 그랬군, 다음 주 부터는 아홉시 반부터 열한시 반까지 봐 줄 터이니 일찍 서둘러 오도록 해. 그리고 대위법도 시작 하자구.’

‘예 신부님 감사합니다.’

어쩌면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나?

모든 렛슨은 반듯이 신부님이 손수 곡에 따라 피아노 또는 오르간으로 들려주시며 설명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학생은 악보의 살아있는 음향을 들으며 잘 잘못을 구별하여 창작의 확실성을 인식시키는 방식이 이문근 신부님의 방침이었다. 나는 정용화의 “꿈의 언덕”, 한하운의 “파랑새”, “보리피리”, “추야원한”, 고시 “청산별곡”, 소월의 “접동새” 등 가곡들과 현악4중주, 목관5중주 등 기악곡들을 두루 섭렵하며 작품세계의 꿈을 넓혀갔다.

내가 처음으로 성가 작품을 만든 것은 "Ave Verum"이었다. 고 이남수 교수는 1959년 봄학기의 서울음대 합창교재에 이곡을 실어 연주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 작곡한 미사“주의 영광”은 기도문이 바뀜에 따라 그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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