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철 이야기 31~32

2015.09.09 16:13

최병철 조회 수:415

31. 합창 코치

얼마 안 되는 명지대학 강사료마저 방학 때엔 없었다. 나는 올 겨울방학 때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1961년 11월 하순 어느 날 저녁에 빨간 자주색 교복에 빵떡모자를 머리에 얹은 예쁜 여학생 둘이 명륜동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이들은 성심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서계순, 윤은경이었다. 한 학생이 편지 봉투를 내밀며

“저희는 우리학교 주매분 교장 수녀님 심부름으로 선생님을 찾아뵈러 왔습니다.”

“오 그래요, 주매분 수녀님이요? 처음 듣는 함자인데요.”

나는 반문하면서 봉투를 뜯고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저희 학교 합창 코치로 모시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고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성심여자고등학교 교장 주매분 수녀 올림.>

“선생님 저희 학교에 꼭 나오신다는 답변을 듣고야 갈 텐데요.”

깜찍한 두 학생의 생떼(?)가 너무도 예뻐 얼른 그래 그렇게 하마하고 싶었다. 하지만 순간 내 머리 속은 갑자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느 구석에 나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구나, 참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 병역 미필이란 딱지를 달고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나의 답변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우물쭈물 얼버무리면서

“며칠후 내가 직접 주매분 수녀님을 뵙고 말씀 드리도록 하지요”

“선생님! 그건 안돼요, 오늘 저희가 답을 가지고 가야돼요.”

“응? 그래? 글쎄 있지 않아?”

“뭐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꼭 오시는 걸로 하세요.”

이 두 학생을 돌려보내고 나는 며칠 동안 잠을 설치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며칠후

“안녕하세요? 최병철 선생님, 처음 뵈어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환한 미소로 나를 마지 하는 주매분 수녀님의 인사,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였다.

“수녀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를 불러주시니 . . . . . ”

내가 우선 밝힐 것은 나의 병역미필에 연관된 실직 사실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를 다그치는 교장 수녀님

“우리 아이들 성탄 음악회의 합창 지도를 부탁 드렸습니다. 내일 부터라도 시작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예? 내일 부터요?”

“예, 성탄이 3주 남짓 남았으니까요.”

“예? 예, 그러면 내일부터 주 3회 정도 방과 후에 연습시켜 보겠습니다.”

교장실을 빠져나온 나는 얼떨떨하면서도 이것이 정규 교사직이 아니고 코치 아르바이트, 그러니까 별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긴급 조치법에는 병역미필자를 고용한 기관장도 처벌받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학교 입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터였다.

성탄 음악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후한 사례금을 받은 나는 일시적으로나마 행복감을 가질 수 있었다. 길고 지겨운 겨울방학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어느 날이었다.

32.?등기우편 한통

우체부가 편지 한통을 건네주며 도장을 가져 오란다. 등기우편을 처음 받아보는지라 신기한 느낌으로 편지를 개봉했다. 주매분 교장 수녀님의 편지였다.

<최병철 선생님, 중요하게 상의할 일이 있으니 한번 저희 교장실에 오시기 바랍니다. 주매분 수녀 올림>

중요한 일? 또 무슨 아르바이트 거리라도 있다는 것일까?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수녀님, 안녕하셨습니까? 다시 부르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예, 선생님 새 학기부터 최 선생님을 저희 성심여자중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모시기로 하고 선생님께서 오실 수 있으신지 여쭙기 위해 뵙고자 했습니다.”

“예? 아! 예! 수녀님 정말 너무도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모교에 재직 중에 병역미필로 강제 해직된 상태에 있습니다. 저를 정식으로 채용하는 기관장도 처벌받는 규정이 있어 이 일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벼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시던 주매분 수녀님

“선생님! 선생님은 병역기피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법은 병역 기피자를 색출하려는 혁명정부의 임시조치로 선생님의 경우는 곧 해제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이야기는 우리 아이들을 통해 많이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모험을 . . . . ”

“우리 수도회가 의논해서 얻은 결론입니다. 선생님께서 걱정하실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수녀원장 맥하디 수녀님께서 기다리시는데 저와 함께 인사하러 가시지요.”

이렇게 해서 나는 1962년 4월 봄 학기부터 성심여자중고등학교 교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 최병철 이야기 48 최병철 2016.01.29 719
42 최병철 이야기 47 최병철 2016.01.27 1089
41 최병철 이야기 46 최병철 2016.01.27 434
40 최병철 이야기 45 최병철 2016.01.23 444
39 최병철 이야기 44 최병철 2016.01.23 368
38 최병철 이야기 43 최병철 2016.01.23 340
37 최병철 이야기 42 최병철 2016.01.23 356
36 최병철 이야기 41 최병철 2016.01.23 416
35 최병철 이야기 40 최병철 2015.09.21 383
34 최병철 이야기 39 최병철 2015.09.21 333
33 최병철 이야기 38 최병철 2015.09.21 364
32 최병철 이야기 37 최병철 2015.09.21 383
31 최병철 이야기 36 최병철 2015.09.21 432
30 최병철 이야기 35 최병철 2015.09.21 394
29 최병철 이야기 33~34 golfism@naver.com 2015.09.15 360
» 최병철 이야기 31~32 최병철 2015.09.09 415
27 최병철 이야기 29~30 최병철 2015.09.09 363
26 최병철 이야기 26~28 admin 2015.09.08 365
25 최병철 이야기 25 admin 2015.09.08 590
24 최병철 이야기 24 admin 2015.09.08 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