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철 이야기 37

2015.09.21 12:19

최병철 조회 수:365

37. 첫날밤

어스름한 달빛이 천지를 뒤덮은 흰 눈에 반사되어 눈앞의 정경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다. 순간 나는 어느 산등성이 위에 홀로 서 있음을 깨달았고 한쪽에 커다란 철책 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철책 문 오른쪽 기둥에 한자로 ‘성심여자대학’이라고 새겨진 것을 희미하게나마 읽을 수 있었고 그 안쪽으로는 경비실로 보이는 조그만 건물이 어둠속에 보였다. 나는 30여 분간 소리치며 철책 문을 흔들어댔다. 하지만 철책 문 안 저쪽 허공으로 메아리쳐 가는 소리가 눈에 보일 뿐 밤의 적막한 고요는 나에게 춥고 지치고 무섭게 까지 조여 왔다. 철책 문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약 50여 미터 안 왼쪽으로 엄청나게 큰 3층 건물의 옆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철책 문을 넘어 그 건물 가까이 가서 또 소리를 질러댔다. 몇 분 후 3층의 한 방에서 전등이 켜지고 창문이 열렸다.

“최 선생님이세요?”

김재순 수녀의 목소리였다.

“예, 수녀님”

“열쇠뭉치를 드릴 테니 저 마진 편 끝 계단을 내려가셔서 열고 들어가 주무세요.”

김재순 수녀는 열쇠뭉치를 창밖으로 던진 후 창을 닫았고 켜졌던 불은 꺼졌다. <당시 엄격한 수녀원 내규에 따라 원장의 허락받은 한계라 한다.> 열쇠뭉치는 쓸어서 쌓아놓은 눈 속에 파묻혀 다시 한 번 나를 애먹였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눈 덮인 계단, 급경사의 4층 건물 높이만큼이나 저 아래 넓은 운동장 한 구석에 집 한 채가 보였다. 나는 시원찮은 다리로 걸어 내려간다는 것을 포기하고 한 계단씩 앉아서 양손을 뒤쪽으로 짚으면서 내려갔다. 열쇠뭉치에는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긴 열쇠 20여개가 달려있었지만 열쇠구멍은 단 하나, 차례대로 하나씩 끼어서 돌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열여덟 번째 열쇠가 문을 열어줬다. 새로 지은 집이었다. 전기도 아직 안 들어와 깜깜했고 눈 덮인 바깥 보다 훨씬 더 어둡고 추웠다. 라이터로 밝히며 방 안을 살펴보니 군대의 야전침대들 위에 군용 담요들이 얹혀 있었다. 그때가 새벽 한시 반이었다. 춥고 고생스러웠지만 그 정도는 문제도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춘천에서 나의 첫날밤은 꿀잠을 이루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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